예전에는 몸이 조금 아파도, 잠 한 번 푹 자고 나면 괜찮아졌습니다.
두통이 있어도 커피 한 잔 마시면 사라졌고,
하루쯤 과로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움직일 수 있었죠.
하지만 지금의 나는, 그 회복 속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.
하루 무리하면 이틀, 사흘까지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
밤잠을 설친 날은 하루 종일 머리가 맑지 않습니다.

처음에는 그게 그냥 '나이 듦'이라고 생각했습니다.
‘이제 나도 늙어가는 거구나’, ‘원래 나이 들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’ 하고
스스로를 단순하게 위로하려 했죠.
그런데 어느 순간, 그 생각이 나를 점점 방치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.
“원래 그런 거야”라는 말은 결국 ‘그냥 참고 견뎌야 한다’는 뜻처럼 느껴졌고,
나는 나를 점점 덜 들여다보게 됐어요.
그때부터 제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.
지금 내 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?
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어디서 온 걸까?
무시하지 말고, 이해하려고 해보자.
그 질문의 시작이 지금의 저를 바꿔 놓았습니다.
이제는 일상 속에서 내 몸의 작은 신호들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.
예를 들어,
저는 카페인을 예전처럼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.
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면 그날 밤은 거의 뒤척이게 되고,
속이 더부룩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엔 대부분 전날 먹었던 음식과 관련이 있었습니다.
또 생리 주기를 지나갔어도,
갱년기 이후의 몸은 여전히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듯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.
감정 기복, 수면의 질, 체온 변화 같은 것들 말이죠.
이런 변화들은 의료 기기 없이도
‘나를 잘 들여다보는 힘’만 있으면 얼마든지 포착할 수 있는 정보들입니다.
그리고 가장 크게 달라진 건,
저는 이제 더 이상 내 몸을 ‘관리 대상’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.
관리란 말은 왠지 내가 뭔가를 고치거나, 개선해야 할 대상처럼 느껴지거든요.
지금의 저는 그보다 ‘돌봄’이라는 말이 훨씬 편하고, 맞는 말처럼 느껴집니다.
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,
가능한 선에서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드는 방향을 찾는 것.
그게 제가 중년 이후의 삶에서 몸과 마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.
중년 이후의 삶은
더 느려지고, 더 섬세해지고, 더 민감해집니다.
하지만 그것이 약함이 아니라,
‘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기’라는 걸
조금 늦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.
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도
예전과는 다른 몸의 반응에 당황하고 있다면,
저처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,
그저 천천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.
몸은 늘 먼저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.
이제야 그 말에 답하려 합니다.